ab > 우자이/삶과 생각 (23) 리스트형 인생은 사후 해석이다. "인생은 사후 해석이다." 이 문장은 정희진의 칼럼에서 처음 접한 이후 지금까지 내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아마 포스트모더니즘에서 '포스트'가 가진 의미를 설명하는 글이었을 거다. 그 후로 내 삶의 다양한 이야기가 '사후 해석'이라는 키워드로 귀결되었다. 2024년 내내 이 생각이 나를 따라다녔다. 포스트나는 이제까지 ‘운명철학관’에 세 번 가봤다. 모두 ‘용한(비싼)’ 곳으로 선배들이 동행을 요청해서 옆에서 구경했다. ‘어르신’들이 나까지 덤으로 서비스를 해주었는데 세 사람의 의견은www.hani.co.kr 롱블랙에서 물리학자 김상욱은 이렇게 말했다. "과학이 뭔가를 발견할 때마다 인간은 허무함을 느꼈어요. 지동설을 발견했을 때, 우리는 태양이라는 거대한 별 주위를 도는 작은 행성이었네? 라.. 탈건, 건축과 탈출 학생들의 건축 매거진, ‘잡담’에서 눈길을 끄는 문구가 있었다. “많은 건축학도들은 이른바 탈건을 예찬하는 동시에 탈건을 불경스럽게 여기는 거대한 아이러니에 빠져있다.” 이 문장 하나에 온갖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건축 설계는 예술이기 이전에 하나의 산업으로 다뤄져야 한다. 이는 건축 설계가 어떻게 수익을 창출하는지를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다. 특히 부동산 시장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 속에 존재한다는 점에서 이야기는 시작되어야 한다. 여러 민간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로는 대부분의 경우 디자인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이면 건축주의 수익률은 증가했다. 23년 겨울, 삼성동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 있는데, 건축주는 매 회의 때마다 “하루에 이자만 백만원이예요. 부디 빠르게 진행해 주세요”라고 했다.. 2023 건축학교 푸른꿈 '지하철의 3차원 도면으로 건축을 이해하기' 예비교사 참여 인터뷰 건축학교 예비교사 시간이 된다면 매 해 정림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건축학교에 예비교사로 참여한다. 작년 건축학교 푸른꿈에선 마지막 수업시간 후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건축에 대한 내 생각들이 은연중에 잘 베어있었다. 나에게 도면이란 어떤 의미인지 부터 설계 뿐 아니라 건축을 둘러싼 (향유 가능한)문화에 기여하고싶은 마음까지. 인터뷰 전문은 아래와 같다.건축학교에서 함께 배우는 예비교사 2023 건축학교 푸른꿈 과정이 마무리되었습니다. 무더운 여름, 방학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청소년이 수업에 참여했습니다. 이번 푸른꿈 과정에서는 ‘지하철의 3차원 도면으로 건축을 이해하기’라는 주제로 직접 모형을 만들고, 2차원의 도면을 3차원으로 바꾸어 보았습니다. 진로를 탐색하는 시기의 청소년 친구들은 건축학도를 꿈꾸며.. 철들지 않은 구석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중학교, 고등학교 친구를 만났다 23년 막바지, 고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를 만났다. 어릴 때를 같이 보냈던 탓에 그 시절 이야기가 자연스레 오갔다. 20년 정도 지난 기억을 끄집어냈다. 지금과 그때가 어떻게 다른지 얘기했다. 어떤 꿈이 있었는지, 학교를 어디 가고, 무엇을 배울 것이고, 어느 회사를 갈지 고민하는 순간에 어떤 생각을 했는지. 지금 가지고 있는 어려움과 걱정은 무언지. 끊임없이 과거와 현재를 오갔다. 우리는 그 때 꿈 꾸던 것과 지금은 너무도 다르단 걸 단박에 알아챘다. "야 이게 나이 드는건가봐. 남들이 보면 웃겠지만 이게 시작인가봐." "싫어. 나는 안늙을건데?" 철이 든다는 것 이게 나이 든다는 것 또는 철이 든다는 걸까? 질문을 던져댔다. 그 질문을 더 고민해 보라는.. 버티는 능력 썸원의 SUMMARY&EDIT 여러 뉴스레터를 챙겨본다. 그 중 많이 와 닿는 뉴스레터는 "썸원의 SUMMARY&EDIT". 여러 콘텐츠들, 글이나 영상 혹은 문득 든 생각을 썸원의 관점으로 선별, 요약해 주는데 단순한 문장을 순차적으로 나열해 주는 방식으로 전달하고 있어 이해도 쉽고 내용도 쏙쏙 들어온다. 선별된 이야기는 전반적으로 내 시각과도 잘 맞아서, 하루 이틀을 넘어 한달 이상의 글들을 조금씩 보고 있노라면 썸원의 글이 내 세계관에 큰 지분이 있는 건 아닐까 싶을 때가 많다. 버티는 능력 이번 썸원의 글 중에 마음에 든 단어는 '버티는 능력'이었다. (글에선 스타트업 혹은 사업으로 명명 되어있지만 나는 이를 항상 건축사사무소라고 읽는다) 사업을 하다 보면 언제든 위기는 오게 마련이고, 어려움이 .. 스케치와 실제, 매체 사이 간극 옛날에 날 가르치던 교수님이 그러셨다.스케치 많이 하는건 좋은데,스케치에 속으면 안된다고.실제와 스케치가 어느정도 맞는지 알아볼 줄 알아야 한다고.실제와 스케치 사이 간극을 알아볼 줄 알아야 한다고.매번 스케치에 속고, 캐드로 입면을 그려보면 많이 다르고,스케치업으로 만나면 또 다르다.또 지어지면 다른 감각으로 다가온다. 자기복제의 수렁 2023 근대도시건축 디자인 공모전에 참여했다 얼마전에 2023 근대도시건축 디자인 공모전에 참여했다. 한데 공모를 진행하며, 고정된 생각의 틀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예전에 제안했던 아이디어와 취향에 맞게 이곳 저곳에서 보아온 단어를 이리저리 짜깁기 해서 쓰고 있었다. 디자인그룹 오즈에서 배웠던 '누워있는 프로시니엄'이라는 단어나 '깊은 마당', '그라운드', '슬라브의 적층', 그리고 '프로그램 적층을 통한 외부공간의 활성화' 등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던 개념들이 한결같이, 머릿속에서 반복되고 있는 것. 이 현상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나의 스타일을 찾아가는 과정일 수 있겠다. 조금 틀어서 보면 이는 나의 생각이나 아이디어가 발전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5학년 때 졸업설계 핵심 단어가 주.. 『정희진처럼 읽기』메타인지 중요한 것은 무지가 아니라 무지를 깨달아 가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뭘 모르는지 모르는 사람. 이런 사람이 활발한 사회 활동을 할 때, '걸어 다니는 재앙'이 따로 없다.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아는 사람, 더 나아가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정확한지, 다른 상황에도 적용할 수 있는 것인지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끊임없이 회고하고 기록해야 한다. 그리고 아는 것을 검증하는 것, 모르는 걸 배울 수 있는 순간은 쉽게 오지 않는다. 이런 부분에 민감해 질 필요가 있다. EBS에서 언젠가 우등생의 비밀이라며 다큐멘터리를 내 놓은적이 있다.(제목은 잘 기억나지 않다.) 그 때 처음 알게 되었던 단어가 메타인지. 다큐에 나오는 우등생은 모두, 하나같이 자신에 대해 정확히 알았다. 지금 정도의 시험.. 봉태규 작가는 글을 핸드폰으로 쓴다. 짧은 글과 그림을 올려야겠다 누구나, 뭐든 그렇지만 글 쓸시간이 없었다. 지금도 그렇다. 그런데 봉태규 작가가 그의 책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어서』를 소개하러 라디오에 나왔을 때 한 말이 나를 콕 찔렀다. 바쁘다는 건 핑계다. 저는 핸드폰으로 글을 씁니다. 또 그의 다른 에세이 『우리 가족은 꽤나 진지합니다』의 머리말은 이렇게 끝난다. 스마트폰으로 글을 써서 책 한 권을 완성했다. 처음에는 시간이 없어서 메모하듯 써 내려갔다. 아이가 잠들었을 때 짬을 냈다. 핸드폰으로 쓰니 분량을 가늠하기 어려워서 평소보다 길게 쓸 수 있었다. 나는 글쓰기를 뭐 그리 거창하게 생각했나. sns에 올리는 짧은 글처럼. 우선 끄적이는 게 중요하지 않나. 짧은 생각이 어떻게든 큰 생각으로 만들어지지 않을까. 위계를 갖고 흐.. AI와 스케치 ChatGPT, Midjourney와 건축 AI generates speculative axonometric construction drawings of modern concrete houses www.designboom.com 건축을 할 때도 그렇고 세상을 바라볼 때도 나는 매번 환경에 대해 생각한다. 예를 들어 '축구선수 손흥민의 탁월함'은 그가 자라온 환경, 부모님, 친구 그리고 한국 사회가 바라보는 축구 이러한 것을 분석해 봐야 한다는 입장인 것. 그런 의미에서 AI의 발전은 내가 내딛고 있는 환경이 바뀌는 것이어서 자연스레 내 이목을 끌었다. 어느 날은 AI가 엑소노메트릭을 그렸다는 기사를 봤다. 당연히 그려낼 것이라 생각하고 있어서 많이 놀랍지는 않았는데, 어서 빨리 써 봐야겠다 싶었다. 환경.. 글과 달리기와 나에게 맞는 시간성 봄과 달리기 무라카미 하루키와 그의 달리기 글을 이리저리 들춰보고 있다. 곧 봄이 온다. 그리고 추위가 가시면 나는 매일 달리기를 한다. 그에 준비 운동처럼, 기대감에 그의 문장을 훑는다. 어느 한 단락에서 하루키는 하버드 신입생으로 보이는 여자애들에게 점점 추월당하는 순간을 썼다. 그녀들 대부분은 날씬하게 마른 작은 몸집에, 하버드의 로고가 붙은 붉은 벽돌 셔츠를 입고 있다. 금발을 포니테일로 묶고, 신제품의 아이팟을 들으면서, 바람을 가르듯 일직선으로 도로를 달려간다. 거기에서는 틀림없이 알지 못할 공격적이고 도전적인 것이 느껴진다. 사람들을 차례로 추월해 가는 것에 그녀들은 익숙해져 있는 듯하다. 그는 또 이렇게 썼다. 그에 비하면 나는, 내 자랑을 하는 건 아니지만, 지는 일에 길들여져 있다. 세.. 문화재 앙각 27도 - 거리와 높이 비 문화재 앙각 27도 문화재 주변 대지에 건축(신축ㆍ증축ㆍ개축ㆍ재축(再築)또는 건축물 이전 등) 행위를 할 때, 문화재의 경계 지표면에서 일정 거리에 비례한 높이 제한을 받는다. 편하게 문화재 앙각 27도라 말하는데, 왜 굳이 27도(거리 : 높이 = 1 : 2)인가 궁금했다. 우선 추려 말하자면 문화재 앙각 27도의 높이 제한은 문화재를 한눈에 담았을 때, 주변 건물이 경관을 방해하지 않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다. 대상을 관람할 때 쾌적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함이고, 이를 위한 주변 건축물에 대한 제약인 것. 보다 법적 내용은 최사원님 블로그에 잘 나와있다. (서울특별시 문화재보호 조례) 문화재 보존영향 검토대상구역 - 여느때처럼 법규 체크를 하다가 새로운게 걸렸다. 건축하는 사람들은 듣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정서경 작가 인터뷰 청취] 글! 습관 들여야 한다 글 쓰는 걸 외면하다 보니 무서워졌다 건축사 자격시험 준비로 그간 글을 올리지 못했다. 합격은 물 건너갔고, 그 대신 손목에 건초염이 찾아왔다. 잘 다독이고 다시 힘을 비축하고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현장 감리를 하고 토마토 패키지 디자인 수정하는 단순한 시간 속에서 죄책감 같은 게 살짝 들었다. 블로그 글은 언제 써? 이제 시간 많잖아. 쓰기로 한 생각은 많은데 글자로 옮겨 적는 일은 엄두가 안 났다. 이런 것 저런 것 써야지 하며 그려둔 그림, 찍어둔 사진, 자료 조사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다 보니 더 어렵고 외면하고 싶었다. 회피의 시간을 보냈다. 그 와중에도 글 쓰는 일에 대한 미련은 못 버리고 이런저런 말들을 모아둘 요량으로 팟캐스트를 들으며 지냈다. 글 쓰는 사람들.. 정림건축문화재단 포럼 : 지금 한국성 회고 정림건축문화재단 포럼 ‘지금, 한국성’ 지난 7월 14일, 21일 이틀에 걸쳐 정림건축문화재단에서 한국성을 주제로 한 포럼이 있었다. 한국성, 학교 다닐 때도 끊임없이 질문해왔던 단어였다. 우리의 것은 무엇인지 하는 막연한 질문이었다. 졸업 즈음 건축 유학을 준비하던 친구와 같은 주제로 더욱 많은 이야기를 했다. 외국 교수들이 봤을 때 한국에서 온 학생이라면 어떤 점이 독특할지, 함께 연구를 해 나가면 어떤 이점이 있을지 자연스레 생각해 볼 것 같았다. 지금 나에게 ‘한국성’에 대해 질문하는 건 두 가지 목적을 가진다. 첫째는 개인적으로 한옥(조선 전통 건축)을 거닐 때 느껴지는 정취와 감각이 좋아, 이를 어떻게 설계에 반영할 수 있을지 궁금해서. 둘째는 지금 여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방식이 과거와는 .. 나도, 끊임없이 깊어질 수 있을까? 서울아트가이드 7월호 친구가 서울아트가이드 7월호에 실린 글을 보내왔다. 마지막 부분에 시니컬함이 폭발한다며. 최근 원로 작가들의 야심 찬 근작들을 자주 접하고 있다. 80이 넘는 나이까지 지속적으로 작업활동을 이어오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대단하지만 … 그러나 이미 자신의 오랜 작업들을 부단히 자기 복제하고 있으며 시장의 요구에 순응해 마치 찍어내듯이 반복해서 작업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가격을 염두에 두어서인지 한결같이 거대한 화면을 영혼 없이, 공허하게 채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나이가 지긋이 들어도 깊어질 수 있을까? 글을 다 읽고 나니 시원하면서도 뒤가 구렸다. 자기 복제를 할 수밖에 없는 것들과 그림의 가격에 담긴 삶과 용기 내어 무언가를 할 수 없겠다는 단념이 그들에게는 있지 않았을.. 삶의 흔적 그리고 여름의 축축한 밤 여름 더위와 삼릉 줄사택 이번 주도 비가 온단다. 공사 현장에 부쩍 자주 나가는데 조금씩 지쳐간다. 문득 두 달 전 스멀스멀 더위가 오르면서 2020년 5월 말 인천 부평 삼릉 줄사택을 돌아보던 장면이 떠올랐다. 아무 이유 없는 그리움이었다. 두 달 전에는 분명, 이 날씨와 감각을 기다렸었다. * 삼릉 줄사택은 일제 말 인천 부평 일대가 공업지대로 계획되면서 건축된 공업 주택단지다. 군수공장에 강제 징용된 한인 노동자들의 숙소로 쓰이다 6.25 전쟁 이후 미군의 배후지로 기능했다. 1963년 일반에 불하된 이후 많은 부분은 철거되었다. 지금 남아있는 줄사택은 보존가치를 인정받아 근대문화유산으로, 역사 교육의 장소로 활용할 방안을 검토 중이다. 줄사택과 봉준호 감독의 영화와 이성복의 시에서 쓴 글 영화와 .. 아득히 먼, 건축가로 성장하는 일 쿰펠과 대화 어느 날은 쿰펠과 이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우자이, 요즘 한국 아뜰리에는 어디가 재미있는 프로젝트 많이 해?" "재미있는 프로젝트요? 재미.." "질문이 이상했나? 요새 일하는 게 재미없어서. 일에 흥미가 떨어지니 정해진 시간만 딱 일하고 퇴근하면 지쳐있고, 한 건 없어 보이고. ··· 때론 몸으로 하는 일을 하면 어떨까 생각해. 그날 일을 마치면 그걸로 끝. 내일 일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일 말야." "저도 가끔 그래요. 애써 집중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매일 일기 쓰면서 보잘것없는 하루여도 조금 나아진 게 있으면 자축하는 시간을 가져요. 그러다 보면 순간 일에 집중하는 저를 발견하기도 하고요." "맞네, 눈에 바로바로 보일만큼 성장할 리가 없는 걸 알면서도 조급해하는 것 같아. .. 보편성과 객관성을 갖는 과정 -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읽기 건축에서 커뮤니케이션 건축을 하다 보니 클라이언트를 만나 기획설계를 시작하게 되거나, 현상공모, 인허가, 납품, 시공까지 커뮤니케이션의 연속이란 생각을 많이 한다. 여기서 커뮤니케이션이란 정확히는 제안 또는 문제에 대해 여러 대안을 내어 놓는 것인데, 그 과정에서 어떤 안은 선택되고 어떤 건 버려진다. 안을 조금 손 보거나 버리거나 하는 크고 작은 커뮤니케이션이 끝난 후에야 건물은 지어진다. 건물이 지어지면서도 그런 대화는 계속 오간다. 그 시간 속에서 제안이 가진 논리적 타당성(주어진 대지 조건, 법규 그리고 금액 최적의 선택 등)은 필수지만 가끔 최종 안이 채택되는 순간엔 그 이상이 필요하다. 타당성 그 너머의 것. 직관적 판단이 그것이고 또는 안이 가진 감동 또는 가치 말이다. 분명 ‘건축은 예술이.. 의자란 단 방향의 시선을 갖는 것 아닐까? 금곡교 밑 벤치 탄천을 달리다 이런 사진을 찍었다. 금곡교 다리 기둥 사이에 벤치였다. 기둥은 아치로 되어있었다. 그리고 아치가 도열된 모습을 바라보도록 그 중심에 벤치가 설치되어 있었다. 의자에 앉아 무언가 바라보던 기억 바라보도록 되어있었다. 바라봄, 그 단어가 헬리녹스 체어원을 가지고 공원을 거닐던 기억을 꺼냈다. 올림픽 공원 내 지구촌공원에 머물렀다. 의자는 관목 숲을 등진채 경사로에 두었다. 지구촌공원의 조각상, 벚꽃나무, 보행로를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그 공간은 이런 단면을 가졌다. 의자는 단방향의 시선을 동반한다 올림픽 공원에서 접이식 의자를 들고 다녔던 기억은 돗자리를 가지고 다닌 것과 분명 달랐다. 돗자리는 시선의 다방향성을 내포했다. 돗자리에 앉으면 눕기도 하고 사방으로 앉음새를 고.. 개념에서 체험으로 - 국립공원 문화 교육 플랫폼 공모 회고 디자인그룹오즈 건축사사무소는 계룡산 국립공원 생태 문화 교육 플랫폼 현상설계에 참여하였고 2등작에 선정되었다. 기본 계획방향을 제시해주신 주대관 소장님은 쉼과 자연에 대한 체험적 경험을 핵심으로 보았다. 도시에서 만나는 문화 교육 플랫폼은 어떤 모습일지, 그 곳에서 바라보는 자연은 어떤지, 마지막으로 그곳을 나와 거닐며 만나는 자연은 어떨지 하는 질문을 주요 골자로 했다. 나무사이로 언뜻 보이는 계획안의 입구는 도시에서 지친 사람들에게 안온한 집으로서 보이고자 했다. 사람들은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초록의 통로를 지나 쉼을 만난다. 처마와 외부 복도로 열린 1층을 지나 2층에 올라서면 사방으로 뚫린 유리로 된 공간을 만난다. 여기에서 나무의 이파리와 나뭇가지와 그들이 이루는 숲을 정면으로 마주본다. 그렇게 .. 자연스러움과 소비 - 김훈 『풍경과 상처』읽기 굴삭기 자격증을 발급 받으러 가다가 한국 산업인력공단 서울 동부지사는 뚝섬유원지역 근처였다. 뚝섬유원지의 하늘은 다리로 연결되는 고가도로로 덮여있는데, 유난히 높아보이는 기둥과 너른 한강과 넉넉한 건물 사이공간 덕에 성수역이나 노원역의 그것과는 달랐다. 넓고 높은 공간감은 한강의 물과 습기 어린 강바람에 잘 맞았고, 그 감각은 사람이 없을 때면 헛헛함을 전해주곤 했다. 그날, 자격증을 받으러 가는 길이 꼭 그랬다. 자격증을 뽑는 일은 두번의 ‘네' 하는 단답과 사천 원이면 끝이 났다. 그 끝에, 그 단순함에 집엘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한강만 멍하니 바라봤다. 물은 아무도 모르게 천천히, 그리고 막을 길 없이 계속해서 흘러갈 것이었다. 마음속 퀭한 구멍으로 저 한강물이 먹먹하게 들어오는 듯했다. 운전이란 .. 자연은 얼마간은 무서운 것이다 - 제주도와 신경숙『외딴방』읽기 제주도에서 쓴 글 고운 모래가 아닌 현무암으로 가득찬 해안의 바다는 무서웠다. 마치 저 돌 위에 발바닥을 대고 서 있는 감각이 느껴졌다. 바다는 삶터겠지만, 사람을 잡아먹기도 하는 대상이라는 서사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리고는 이렇게 썼다. 검은 흙, 검은 돌, 낮은 오름은 모두가 거친 바다와 그의 바람에 고개 숙이고 엎드려 있는 듯 했다. 바다는 이곳과 저곳을 가르는 경계가 되기도 했을 것이고 삶터였던 바다는 가끔 사람도 집어삼켰을지 모른다. 신경숙 『외딴방』 외딴방의 주인공은 자신의 유년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내게 있어 자연이란 얼마간은 피로하고 얼마간은 무서운 것이다. 신경숙, 『외딴방』 문학동네, 2001 자연이 마음달랠 하나의 장면이기 위해서는 가까이서가 아닌, 피부 밑이 아닌, 저기 저.. 아름다움은 고통을 품고 있어야 한다 - 강상중 『구원의 미술관』읽기 아름다움은 고통을 품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아름다움은 관람자 삶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고통은 작가, 작품, 관람자에 서린다. 작가 본인이 겪은 고통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 앞에 초연히 섰을 때 작품은 아름다워진다. 작품 자체가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고통을 표현하고, 설득력을 가질 때 아름답다. 관람자가 살아오면 겪은 고통이 작품을 감상하는 데 도움이 될 경우도 그렇다. 어느 날, 대림미술관에서 사진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토드 셀비의 ‘즐거운 나의 집’ 전시를 봤다. 셀비는 연예인, 디자이너, 음악가, 작가 등의 집이나 작업실을 자신만의 독특한 관점으로 찍은 사진을 늘어 놓았다. 다양한 색을 거침없이 사용하는 그의 일러스트도 멋졌다. 그러나 ‘멋지다’, ‘개성적이다’, ‘예쁘다’ 등의 감탄..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