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의 건축 매거진, ‘잡담’에서 눈길을 끄는 문구가 있었다. “많은 건축학도들은 이른바 탈건을 예찬하는 동시에 탈건을 불경스럽게 여기는 거대한 아이러니에 빠져있다.”
이 문장 하나에 온갖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건축 설계는 예술이기 이전에 하나의 산업으로 다뤄져야 한다. 이는 건축 설계가 어떻게 수익을 창출하는지를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다. 특히 부동산 시장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 속에 존재한다는 점에서 이야기는 시작되어야 한다.
여러 민간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로는 대부분의 경우 디자인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이면 건축주의 수익률은 증가했다. 23년 겨울, 삼성동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 있는데, 건축주는 매 회의 때마다 “하루에 이자만 백만원이예요. 부디 빠르게 진행해 주세요”라고 했다. 당시 금리가 가파르게 올랐던 시기였다.
또 건물의 가치는 대개 땅값에 비례하고, 월세는 입지에 의해 결정된다. 물론 건축 디자인을 통해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개인의 취향을 고려하는 일은 건물 값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건축 설계는 저임금과 짧은 프로젝트 기간에 놓이며, 이는 자연스럽게 높은 업무 강도와 잦은 야근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불가피하다고 단정 짓고자 함은 아니다. 이 상황에서 높은 임금과 작업의 가치 그리고 긴 프로젝트 기간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중의 건축물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변화해야 한다. 설계의 가치를 점진적으로 높이기 위해, 무엇이 더 나은 삶이고 좋은 환경인지를 논의하는 기회가 많아져야 하며, 그 경험이 여러 수준에서 공유되고 쌓여야 한다.
최근에 조성익 소장님의 ‘건축가의 공간 일기’라는 책을 봤는데, 공간에 대한 개인의 경험이 이렇게 쌓일 수 있구나 싶어 보는 내내 놀라웠다. 블로그에도 자주 언급했던 ‘앤트러사이트 서교’ 카페와 관련된 일기도 있었는데 반갑기도 했다. ‘앤트러사이트 서교’는 매번 방문할 때마다 나에게 “지금의 삶과 환경이 최선인가?” 하고 묻는 듯 했는데 자연스레 그 기억들이 떠올랐다. 책은 말한다. 누구나 좋은 공간과 순간을 포착하고 왜 좋은지 궁리하자고.
또 IDR건축사사무소 인스타그램에 어느 하루는 비슷한 결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전보림 소장님은 책 '익숙한 건축의 이유'를 최근에 내셨다.
"책으로 돈 벌 생각은 정말 1도 없었지만(1권 팔면 인세는 커피 한 잔 값도 안되는 1,850원) 그래도 이렇게 조용히 묻히는 책이 되려나 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도서관에서 내 책을 검색해 보니 비치 중인 곳 보다 대출 중인 데가 더 많다. 그래, 그저 많이 읽히기만 한다면 정말 좋겠다. 그래야 조금씩 우리 도시가 살기 좋게 바뀌어 갈 테니."
기업 측면에서는 고부가가치를 창출하여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거나, 설계 자동화를 통해 업무 강도를 줄여야 한다. 비교 우위에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내거나, 동일한 결과물을 더 빠르고 적은 노동력으로 생산할 수 있는 회사가 되어야 한다. 개인적으론 ‘AI와 BIM’ 그리고 ‘나와 팀원의 성장’이 두가지 방향에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BIM의 경우는 아직 찍먹만 해 본 상황이라 실제는 변하는 것 하나 없을지 모른다. 아래 적용기도 읽어보며 이래저래 건드려 보고는 있는데 아직 잘 적용하리란 확신은 안선다. 나와 팀원의 성장은 어느 회사에나 중요한 요소일 테고.)
개인의 차원에선 저임금과 잦은 야근을 견딜 수 있는 등가교환물이 필요하다. 동기부여라 할 수 있겠다. 이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실제 건물에 반영되거나, 제한된 시간 내에 문제를 해결하는 성취감이 될 수 도, 혹은 높은 임금은 아니지만 보장된 저녁일 수도 있겠다.
나는 그 중 성장하고 있다는 감각, 깊어지고 있다는 감각을 등가교환물로 여기고 있다. 몸담고 있는 회사는 민간 프로젝트에선 철저히 건축주의 요구를 들어주고, 공모전이나 현상 설계에서는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안을 내어 놓으려 한다. 나는 이 위에서 피어날 나만의 건축관 혹은 철학을 꿈꾼다. 지속가능성과 사회의 흐름 속에서 변치 않을 중심을 찾고 있다. 여러 프로젝트와 그 속의 문제를 만나면서, 합리적이고 납득 가능한가를 질문하면서도 내 내부 논리가 어떤지 되돌아 본다.
마지막으로 ‘잡담’의 게시물로 되돌아가자면, 대학에서는 건축의 사회적 의미와 철학과 아름다움을 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축계가 놓인 사회적, 산업적 맥락을 더 중점적으로 다뤄야 한다. 이를 통해 건축 설계뿐 아니라 건축 관련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람, 발주처에서 건축 설계의 질을 판단할 수 있는 사람 등 건축 전반에 걸쳐 양질의 인적 자원을 배출한다면 어떨까 상상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