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림건축문화재단 포럼 ‘지금, 한국성’
지난 7월 14일, 21일 이틀에 걸쳐 정림건축문화재단에서 한국성을 주제로 한 포럼이 있었다. 한국성, 학교 다닐 때도 끊임없이 질문해왔던 단어였다. 우리의 것은 무엇인지 하는 막연한 질문이었다. 졸업 즈음 건축 유학을 준비하던 친구와 같은 주제로 더욱 많은 이야기를 했다. 외국 교수들이 봤을 때 한국에서 온 학생이라면 어떤 점이 독특할지, 함께 연구를 해 나가면 어떤 이점이 있을지 자연스레 생각해 볼 것 같았다.
지금 나에게 ‘한국성’에 대해 질문하는 건 두 가지 목적을 가진다. 첫째는 개인적으로 한옥(조선 전통 건축)을 거닐 때 느껴지는 정취와 감각이 좋아, 이를 어떻게 설계에 반영할 수 있을지 궁금해서. 둘째는 지금 여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방식이 과거와는 어떻게 달랐고, 다른 나라와 무엇이 다른지 분명히 이해하고 싶어서다.
이번 포럼에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알 수 있는 첫 질문을 명확히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마지막 발제자 이병태 교수는 일제 강점 당시 한국에 모더니티가 들어오는 과정을 이야기하며 이렇게 맺음말을 했다. “우리 사회의 공간과 시간이 완벽하게 무너져 간 것은 권력의 작동과 분리해서 볼 수는 없다.” 문화와 예술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과정에 권력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의미였다. 일제는 조선을 근대화하기 위해 성균관을 경학원으로 낮추고 경성제국대학을 만들었는데, 이곳에 입학하는 것이 개인이 정치권력을 취하기 위한 손쉬운 방법이었다. 이후 한반도엔 빠르게 근대식 건물이 지어졌다.
한국 전통 미학, 풍류를 중심으로
이리저리 포럼 내용을 정리하다 보니 신기했다. 한국 미학을 얘기한 민주식 교수와 앞서 인용한 이병태 교수의 끝말이 연결되었다. 포럼은 총 네 번의 발제로 이루어졌는데 민주식 교수의 한국 미론(한국 전통 미학) 발제는 두 번째, 이병태 교수의 한국 철학과 모더니티(일제 강점과 조선의 근대화)는 네 번째였다.
민주식 교수는 한국 전통 미학 사상의 근원을 “풍류”라고 봤다.
그리고 그는 풍류를 중심으로 신라시대 ~ 조선 후기까지의 대표 문인과 그들의 미학관 혹은 사상을 나열했다. 그중 개인적으로 마음에 남았던 단어는 ‘물아’, ‘자연(저절로 그러한 것)’, ‘충담(성질이 맑고 깨끗한)’, ‘방경(모나고 굳셈)’, ‘고졸(예스럽고 순박하며 손질하지 않은)’이었는데 모두 풍류를 이루는 단어들이었다.
고려시대 이규보부터
조선 중기의 이이와
조선 말기의 김정희까지.
이러한 나열 말미에 한국 전통 미학 사상을 총괄, 세 가지 특징으로 정리했다. 첫째, 외면적, 감각적 아름다움보다 심성의 미를 중시한다. 둘째, 저절로 존재하는 자연에 귀일 하기를 추구했다.(무위자연) 소박, 검소, 담박의 미로 향했다. 셋째, 예술을 창작자나 감상자의 만족이 아닌 인간의 삶에 이바지할 수 있는 현실적 역할을 가진 것으로 보았다.
건축은 어떤 가치관과 권력 속에서 만들어지는가
그의 발제 마지막에서 한국 전통 미학 사상을 총괄 정리하고 있지만, ‘전통’ 미학을 논하는 것에서 벗어나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문화와 예술이 어떤 사상, 가치관에서 태어나느냐가 그 시대 문화의 성격을 결정한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걸쳐 드러난 특징들은 모두 그 시대의 주력 학문에 영향을 받았다. 유교와 도교, 성리학과 실학에 담긴 생각들이 예술에 녹아져 있다.
특히 조선에선 ‘학문은 곧 (정치)권력’이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문장을 이렇게 다시 되물을 수도 있겠다. 지금 이 시대에 작동하는 가장 뚜렷한 권력인 자본에서 문화, 예술은(그리고 건축은!) 어떻게 생산되는가. 그리고 나는 이에 대해 어떤 입장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