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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 > 우자이/삶과 생각

인생은 사후 해석이다.

   "인생은 사후 해석이다." 이 문장은 정희진의 칼럼에서 처음 접한 이후 지금까지 내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아마 포스트모더니즘에서 '포스트'가 가진 의미를 설명하는 글이었을 거다. 그 후로 내 삶의 다양한 이야기가 '사후 해석'이라는 키워드로 귀결되었다. 2024년 내내 이 생각이 나를 따라다녔다.

 

포스트

나는 이제까지 ‘운명철학관’에 세 번 가봤다. 모두 ‘용한(비싼)’ 곳으로 선배들이 동행을 요청해서 옆에서 구경했다. ‘어르신’들이 나까지 덤으로 서비스를 해주었는데 세 사람의 의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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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롱블랙에서 물리학자 김상욱은 이렇게 말했다. "과학이 뭔가를 발견할 때마다 인간은 허무함을 느꼈어요. 지동설을 발견했을 때, 우리는 태양이라는 거대한 별 주위를 도는 작은 행성이었네? 라고 허탈해 했어요. 하지만 허무라는 건 인간의 상상 체계가 만든 거예요. 허무해지는 건 그것이 의미 없어서가 아니라, 인간이 오만해서인 거죠. 우리는 이걸 나쁘게만 받아들이지 않아도 됩니다. 인간은 의미 없는 우주에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잖아요?"
   이 말은 나에겐 울림이 있었다. 전라남도 장성, 어느 산에서 나는 쏟아지는 별빛을 본 적이 있다. 그 무한한 별빛에 무력감을 느꼈고 무서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고 만들어가는 나를 발견했다.

   또, 불교의 가장 중요한 경전인 반야심경에서는 이렇게 쓰여있다.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오온이 공한 것을 비추어 보고 온갖 고통에서 건너느니라." 오온이란 내가 인지하고 해석하고 느끼는 모든 것을 말한다. 그리고 공하다는 건 잠시 그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흐르는 것을 말한다. 비워두는 것 자체가 맞다는 말이다. 다채롭게 이해될 수 있고, 실제는 흐릿한 경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두 단어를 종합해 보면, 내 눈앞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내 몫이고, 잠시 그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지난 일에 대해 나는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가? 어떤 느낌과 감정으로 옛 기억을 보는가?

   셜리 케이건 교수는 '죽음이란 무엇인가'에서 인생은 사건의 총합이 아니라 그 사건들을 통해 느낀 감정의 총합이라 했다. 우리가 경험하는 사건보다 그로 인해 느끼는 감정이 더 중요하다.

   이러한 다른 이들의 말에 의지해 나를 되돌아봐도 꼭 같았다. 인생은 사후 해석이었다.

   사후 해석은 곧 회고와 기록이다. 과거를 단순히 반추하는 일이 아니고, 우리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미래를 위한 방향 설정의 중요한 과정이다. 특정 사건에 대한 긍정적이고 보다 나은 매듭, 해석 그리고 반성은 다음을 나아가는 데 힘이 된다. 그래서 나는 글과 그림으로 온갖 것을 해석해 둔다.

   이렇게 1년을 씨름하고 나니,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이유에 대해 내 내부 논리가 갖춰진 듯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행동은 참 어렵다. 매일 그리고 쓰는 일이 몸에 잘 붙지 않는다. 사후해석의 다음은 행동을 통해 나를 정의하는 일이 될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