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앙각 27도
문화재 주변 대지에 건축(신축ㆍ증축ㆍ개축ㆍ재축(再築)또는 건축물 이전 등) 행위를 할 때, 문화재의 경계 지표면에서 일정 거리에 비례한 높이 제한을 받는다. 편하게 문화재 앙각 27도라 말하는데, 왜 굳이 27도(거리 : 높이 = 1 : 2)인가 궁금했다.
우선 추려 말하자면 문화재 앙각 27도의 높이 제한은 문화재를 한눈에 담았을 때, 주변 건물이 경관을 방해하지 않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다. 대상을 관람할 때 쾌적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함이고, 이를 위한 주변 건축물에 대한 제약인 것.
보다 법적 내용은 최사원님 블로그에 잘 나와있다.
메르텐스 학설과 앙각 27도
도시광장의 척도와 건축물의 인상에 대해 연구했던 메르텐스, 그의 학설에서 ‘앙각 27도’를 먼저 찾아볼 수 있었는데, 이 설은 나름 다른 연구와 결을 같이 하는 결과였는지 일본 경관학에서도 자주 언급된다.
하구치 타다히코 『경관의 구조』에서는 메르텐스의 발표를 그대로 인용한다.
“관찰자가 멀리서부터 한 건물을 바라볼 때 그 건물은 넓은 환경과 함께 ‘회화적’ 인상을 띤다. 그 관찰자가 건축물에 보다 가까이 섰을 때(앙각 18도) 비로소 건축물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더 가까이, 27도의 앙각에 이르기 되면 건물만 전 시야를 점유하게 되고 비교적 건물의 큰 부분, 특히 의미 있는 부분만이 눈에 비친다. 약 45도의 앙각으로 보이는 곳에서 관찰자는 상세한 장식물을 가장 많이 식별한다.”
메르텐스는 2:1의 각도 뿐 아니라 4:1, 3:1, 1:1에 대응하는 각도와 각 각도에 따라 대상이 어떻게 인지 되는지 이야기하는 셈인데 설계자 입장에선 건물, 구조물 등이 어떻게 보일지는 그에 걸맞은 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해서 의미가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국내의 문화재 관련 높이제한 법규는 문화재를 품은 주변 풍경보다는 문화재 그 자체에 중점을 두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아쉬움도 남았다. 어떤 문화재를 향유한다는 건 문화재 자체 만을 바라보는 일을 넘어 역사적 배경, 물리 환경적 배경까지도 함께 즐겨야 하는 건 아닐지 하는 마음에서. (주변 땅을 가진 사람의 재산권을 침해하지 않기 위한 절충안으로 27도였을까? 싶기도 하지만.)
설계 도구로서 27도 그리고 풍경
건축 법규의 숨은 뜻이 아쉽다는 둥, 그런 마음은 접어 두고서라도 18도, 27도, 45도의 상대 치수는 머릿속에 넣어 뒀다가 계획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때 꺼내어 쓰면 좋겠다. 건물이 주변 환경과 잘 녹아있어야 할지, 더 앞으로 나와 자신을 드러낼지, 아니면 건물 자체보다는 내부 공간과 그 속 활동을 보여줄지 하는 고민들 앞에서 사용할 도구처럼 말이다.
계획 의도와 반대로 실제 지어진 건물이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면 얼마나 안타까울까 하는 마음에서도.
또, 이는 어떤 장면이 풍경으로 인식되기 위한 기본 조건이겠다. 경관학자 강영조의 책 『풍경에 다가서기』에서도 해당 내용을 다루고 있고, 조선 후기 화가 강희언의 인왕산도를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화폭을 눈에 비유한다면 이 그림은 한눈에 꼭 드는 크기로 그렸다.
숲을 보았지만 나무는 보지 않았다는 말은 대상에 대한 시각 크기가 그 대상의 성격을 결정짓는다는 점을 웅변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시각의 크기는 풍경 체험의 질을 좌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