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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 > 우자이/삶과 생각

자연스러움과 소비 - 김훈 『풍경과 상처』읽기

굴삭기 자격증을 발급 받으러 가다가

  한국 산업인력공단 서울 동부지사는 뚝섬유원지역 근처였다. 뚝섬유원지의 하늘은 다리로 연결되는 고가도로로 덮여있는데, 유난히 높아보이는 기둥과 너른 한강과 넉넉한 건물 사이공간 덕에 성수역이나 노원역의 그것과는 달랐다. 넓고 높은 공간감은 한강의 물과 습기 어린 강바람에 잘 맞았고, 그 감각은 사람이 없을 때면 헛헛함을 전해주곤 했다. 그날, 자격증을 받으러 가는 길이 꼭 그랬다.
  자격증을 뽑는 일은 두번의 ‘네' 하는 단답과 사천 원이면 끝이 났다. 그 끝에, 그 단순함에 집엘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한강만 멍하니 바라봤다. 물은 아무도 모르게 천천히, 그리고 막을 길 없이 계속해서 흘러갈 것이었다. 마음속 퀭한 구멍으로 저 한강물이 먹먹하게 들어오는 듯했다.

  운전이란 나와 먼 것이어서, 굴삭기를 몰 때면 항상 고깔을 쓰러트렸다. S자 주행코스의 폭은 굴삭기 너비와 같은 듯 비좁아보였고, 운전석에서 볼 때 바퀴와 코스선의 간격을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선생은 왜 설명을 이해하지 못하느냐고 나무람을 얼굴에 띄웠고, 답답한 한숨을 연거푸 했다. 뒤에서 구경하던 이들은 별 볼일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나 때문에 연습시간이 늘어지는 일도 있었는데 보다 못한 이들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훈수를 뒀다.
  그래서 저놈의 자격증을 내 두 손으로 드는 날은 포켓몬이 진화를 하는 일이나 RPG 게임에서 목표 레벨에 도달하여 새로운 스킬을 쓰게 되는 것과 같이 극적인 무언가가 있을 것만 같았다. 한데 그게 아니어서, 허탈한 마음에 멍하니 한강물만 바라봤다.
  켜켜이 쌓인 연습시간 속에, 나는 원래부터가 S자 코스를 통과하는 사람이었고, 당연한 것이어서 그 사실이 놀랍거나 하지 않았다. 저 한강물처럼 사람이 나아지는 일은 아무 소리 없이 천천히 그리고 막을 길 없이 계속해서 흘러가는 것일지도 몰랐다.

아무도 없는 한강만 멍하니 바라봤다

  그렇게 어느 하루는 그놈의 자격증을 발급받았고, 어느 하루는 몸에 걸칠 옷가지들을 샀다. 자격증이란 ‘삶이 변하는 일은 한강물 같이 천천히 소리 없이 그리고 막을 길 없이 되는 것’ 임을 뜻했고, 군복이 아닌 새 옷을 사는 건 내 외견을 한눈에 변화시키는 일이었다.
  삶이란 본래가 천천히, 그치만 멈출 수 없는 자기 확신으로 변하는 것이었는데, 옷을 사는 일, 시계를 사는 일, 가구를 사는 일 등은 마치 나 자신과 삶이 급격히 변할 수 있음을 보증하는 듯했다. 게다가 무언가를 구매함으로써 변하는 것은 실제로 내가 아니고 내 삶이 아닌데도, 그 변화가 크고 확실하며 그에 비해 들어가는 노력이 작은 듯 보였다.

  그런 소비에 의존하는 것은 삶을 기만하고 나를 꾀어내는 것이란 걸 알면서도 쇼윈도를 쉽게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럼 안되지, 그러면 안돼” 하고 서점에 갔다. 그곳에서 김훈을 찾아다녔다. 그의 글이 한국의 산과 강을 이야기했고 섬진강가 마암분교 아이들을 이야기했기 때문인데, 그 아이들에게서 나답게 살아갈 용기를 배웠다. 그곳의 산과 강이 드라마틱한 외견의 변화와 그에 수반되는 소비적 삶, 그렇지만 명확하고 안전한 그런 삶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다독여주는 것만 같았다. 서점에서 김훈의 『풍경과 상처』라는 책을 발견했다. 그는 책에 이렇게 써 놓았다. 놀리는 것인지 잘 다독여 돌려보내려는 것인지 모를 글이었다. 소비는 욕망 이었고, 그를 외면하려는 내 모습이 엇갈려 보였다.

인간은 욕망을 사회경제적으로 정당화하고,
정당화된 욕망을 제도화 함으로써 낙원을 지향할 수도 있지만,
욕망의 뿌리를 제거함으로써 낙원을 지향할 수도 있다.
욕망을 제거하려는 길과 욕망을 완성하려는 길이
마음속에서 엇갈리면서 사람들의 꿈은 엎어지고 뒤벼지며,
사람들의 말은 끝없는 동어반복으로 중언부언을 거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