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더위와 삼릉 줄사택
이번 주도 비가 온단다. 공사 현장에 부쩍 자주 나가는데 조금씩 지쳐간다. 문득 두 달 전 스멀스멀 더위가 오르면서 2020년 5월 말 인천 부평 삼릉 줄사택을 돌아보던 장면이 떠올랐다. 아무 이유 없는 그리움이었다. 두 달 전에는 분명, 이 날씨와 감각을 기다렸었다.
* 삼릉 줄사택은 일제 말 인천 부평 일대가 공업지대로 계획되면서 건축된 공업 주택단지다. 군수공장에 강제 징용된 한인 노동자들의 숙소로 쓰이다 6.25 전쟁 이후 미군의 배후지로 기능했다. 1963년 일반에 불하된 이후 많은 부분은 철거되었다. 지금 남아있는 줄사택은 보존가치를 인정받아 근대문화유산으로, 역사 교육의 장소로 활용할 방안을 검토 중이다.
줄사택과 봉준호 감독의 영화와 이성복의 시에서 쓴 글
영화와 시 같은 간접적인 경험과 피부로 느껴지는 더위가 한데 얽혀 애틋한 마음이 남았고 이렇게 글을 썼다.
2022. 5. 18
날이 점점 따뜻해지면서 여름 저녁에 대한 어렴풋한 이미지가 떠오르고 있다. 어느 단층집으로 이루어진 구릉지, 백사마을이나 개미마을 일 수 있겠고, 구룡마을 일 수도 삼릉 줄사택지(삼릉은 구릉은 아니지만) 일 수 있겠다.
또는 영화 괴물, 그 봉준호 감독의 축축한 감각처럼.
또는 이성복의 시 『그해 여름이 끝날 무렵』 에서 처럼.
그해 여름이 끝날 무렵 안개는
우리 동네 집들을 가라앉혔다. 아득한 곳에서 술 취한 남자들은 누군가를
불러댔고 누구일까, 누구일까 나무들은 설익은 열매를
자꾸 떨어뜨렸다 그 해 여름이 끝날 무렵 서리 맞은
친구들은 우수수 떨어지며 결혼했지만 당분간 아이 낳을
생각을 못했다 거리에는 흰 뼈가 드러난 손가락, 아직
…
왜 갑자기 나는 축축하기도 한 계절이자 아득한 계절을 기다리고 있나. 벌레들이 왕성하고 더위에 고여있는 물은 썩어가고 잡풀이 무성히 자라고 피부는 습기로 끈적한 그 저녁을. 청량감은 오지 않을 것임을 잔인하게 확인시켜주는 열대야를. 왜 갑자기 그리워 하나. 왜 그 눅눅한 세상에 가릴 것 하나 없는 내 피부가 떠오르나. 왜 그곳의 삶이 미화되어 다시, 나를 찾아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