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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역 나무사이로 - 단 차이와 시퀀스

 

경복궁역 나무사이로 속 다락방 - 비로소 두런두런 얘기할 공간을 찾았다.

2월 19일 일기 토요일 점심, 송과 후배 한명을 만났다. 그리고 노트에 이런 글을 남겼다. 우리는 광화문에 모였다가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누군가에게는 전날 쌓인 숙취를 풀기 위해 햄버거를 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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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과 부엌

우자이 스케치, 나무사이로 내자점 단면

  전통 온돌에서 아궁이가 설치되는 부엌은 다른 공간보다 푹 꺼진 형태로 지어졌다. 이 부엌 위를 천장으로 막으면 다락이 생긴다. 경복궁역 근처 카페, 나무사이로 내자점의 다락방이 좋아 이것저것 찾아보다 알게 됐다. 그 다락방 밑은 원래 주방이었겠구나.

  카페가 가진 바닥 높이에는 건물이 지나왔을 그간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바닥 단 차이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고민하며 단면을 그려 보았다. 바닥 높이는 공간 용도에 따라 달랐다. 도로와 커피 주문하는 공간 사이부터 주문하는 공간과 마당 사이, 마당과 테이블이 놓인 공간 사이까지 기본 두 계단, 많게는 네 계단까지 차이가 났다.

카페는 이런 시간들이 쌓여서 서로 다른 바닥 높이를 갖게 되었다

누하동 266번지 평면도를 기본으로 우자이 편집, 나무사이로 내자점 평면 변경과정(예상)

  건축물 대장과 누하동 226번지 평면도를 가지고 짜깁기해 보았다. 처음은 단일 주거 공간에서 일부가 공인중개사 사무소로 이용되었다가(2004) 나머지의 길에 면한 부분을 개조하여 세탁소를 운영하기 시작하였다.(2008) 그리곤 세탁소와 주거 공간에 나무사이로 내자점이 첫 입점을 하였다.(2013) 2017년, 나무사이로로 건물 전체가 통합되어 지금까지 운영되었다.

  도시한옥은 바로 카페로 용도 변경되지 않았다. 화장실이 있던 방 두 곳은 공인중개사와 세탁소로 각각 변경되었다가 커피 주문하는 곳과 원두 전시하는 곳으로 바뀌었다. 자연스레 도로와 단 차이를 두지 않고 바로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4년에 걸쳐 용도가 변했기 때문에 바닥 단 차이를 그대로 살릴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공인중개사와 카페가 함께 했을 때 기존 주거공간과 세탁소 바닥의 높이를 맞추는 공사는 불가능했다. 공인중개사가 카페로 편입되었을 때는 이미 자리 잡은 공간들을 변경하는 것 또한 쉬운 선택이 아니었을 거다.

단 차이에 맞추어 동선과 시퀀스는 이렇게 바뀌었다

우자이 스케치, 나무사이로 내자점 단면투시도

  도시한옥이 카페로 변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덕에 나무사이로는 다채로운 변화를 가진 공간 시퀀스를 갖게 되었다. 도시한옥일 때 건물은 도로에서 마당으로, 그다음 각 방으로 들어가는 구조였다. 외부공간에서 사유화된 외부로, 그리고 각 개개의 내부 공간으로 가는 흐름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카페로 변한 건물은 유리로 훤히 들여다보이는 주문 공간이 먼저 도로와 만난다. 이곳이 어떤 걸 파는지, 무엇을 제공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는 마당을 만난다. 내부를 통해 만날 수 있는 이 외부공간은 보다 내밀한 감각을 느끼게 한다. 꼭 커피 메뉴판을 보고 나서야, 아니면 어떤 원두를 파는지 알고 나서야 마당에 올라설 수 있다. 이곳은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만을 위한 외부다. 그렇게 카페 가장 깊은 곳, 테이블에 앉게 되면 그 내밀한 감각은 극대화된다. 우리들만을 위한 외부공간에서 조금 어두운 내부 공간으로 들어서는 과정 때문이다. 기존 공간 시퀀스는 외부에서 내부로 장면이 단순 전환되는 반면 리모델링 이후 카페의 시퀀스는 보다 극적으로 변했다. 도로와 마당 사이에 주문받는 공간을 사이에 둠으로써 외부에서 내부로, 내부에서 다시 외부로 그리고 또다시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가는 과정을 갖게 되었다.

글로 정리하다 보니, 송이 지난번에 찍은 사진과 문장이 떠올랐다

  여기서도 각 공간 사이 단 차이는 중요하다. 마당에 들어서기 위해선 계단 두 단을 올라야 한다. 단지 두 단 차이지만 방금 지나온 주문받는 공간과 이 외부공간은 다른 곳임을 느끼게 한다. 테이블이 있는 곳은 마당에서 계단 네 단 차이가 난다. 내밀한 내부로 가기 위해서는 더 올라서야 한다. 도로부터 안쪽 테이블 공간까지 바닥이 단 차이 없이 연결되어 있었다면 받을 수 없는 감각이다.

  문득 송이 쓴 게시물이 생각났다. 이렇게 썼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노력과 집중을 요한다. 덧붙이자면 고작 한 두 계단도 그렇다. 이런 계단이 가진 특징이 카페 공간 시퀀스에 잘 녹아 있구나 싶었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

계단을 내려가는데 신경쓰다보면 주변을 볼 수 없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노력과 집중력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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