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로사 포스코센터점에는 극장형 계단이 있다
삼성역 근처 테라로사 포스코센터점에 갔다. 원하는 원두를 고르고, 추출 방법을 선택하곤 뒤를 돌아봤다. 조금 놀랬다. 검정의, 다소 가파른 그리고 큰 계단이 자리 잡고 있었다. 계단은 위층으로 올라가는 역할을 했고 또 머무르는 장소의 역할을 했다.
이 카페를 설계한 민현준 건축가와 그의 사무소 MPART 건축사사무소 블로그를 들어가 보면 이렇게 설명되어있다.
1층과 2층을 개방하여 극장형 계단을 만들어
이동 동선 겸 머무르는 혹은 이벤트 장소가 되도록 했습니다.
‘극장’하면 보통 좌석 앞에 무대가 있다
처음은 조금 의아했다. 커피를 주문하고 뒤돌아서면 이렇게 강한 존재감으로 계단이 보인다는 게 당황스러웠다. 극장처럼 계단이 쓰이기 위해서는 무대가 되는 공간이 있어야 되지 않을까? 올라가는 동선과 커피 주문을 위한 동선이 너무 가까이 붙어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계속 꼬리를 물었다.
극장의 역할을 하는 계단은 대부분이 그 앞에 넓은 공간을 가졌다. 90-92년 로마시대 반원형 극장이 그랬고 2017년 지어진 성수 헤이그라운드 내부 계단형 강연 공간(Hey Lounge +)이 그랬다. 그래야 사람들이 무대에 서서 춤춘다거나 노래하거나 연설할 수 있다.
온갖 생각이 지나고 계단에 앉아보고는 비로소 이해되는 게 있었다. 그리고는 이 특이한 계단의 단면을 이렇게 그렸다. 단면에는 바 테이블과 책꽂이와 창과 자연을 그려 넣었다. 뭐든 할 수 있게 비워둔 무대는 없었다. 정확히는 계단에 딸린 무대란 비어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기다란 바 테이블과 책꽂이와 창문으로 채워졌다.
카페의 ‘극장’형 계단에선 무엇을 공연하나
카페의 계단은 분명 극장형 계단인데 그 앞에 비어있는 공간은 없다. 사람들이 모여 연극을 할 수도, 누군가 앞에 서서 발표를 할 수도 없다. 대신 계단에 앉으면 커피가 만들어지는 활동과 커피 관련 서적과 커피 마시는 사람들과 자연이 한눈에 들어온다. 커피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모두 배우가 된다. 사람들은 커피를 매개로 이야기한다. 커피를 만들기도 했고, 책을 보며 커피에 대해 알아가는 사람도 있다. 극장형 계단은 자연을 배경으로 커피로 연결된 활동을 보고 즐기도록 한다.
재료의 색도 이런 경험을 위해 고려되었다. 커피와 사람 그리고 활동 이외 배경이 되는 건축요소는 모두 검은색이었다. 천장도 검정으로 도색된 듯했고, 가구는 계단과 마찬가지로 구로철판(열압연강판)으로 되어있었다. 구로, 일본어 정확한 발음으론 쿠로, 그러니까 검은색 강판은 각 요소의 물성을 지웠다. 1층과 2층 오프닝을 위한 거더나 빔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검정은 구성요소의 분간을 어렵게 만드는 대신 물체의 양감을 강하게 했다. 그렇게 계단은 덩어리감이 두드러진 솔리드와 밝은 색으로 빛나는 보이드를 바라보게 했다. 그 대비가 마치 깊은 장면을 보는 듯했다. 장면 더 깊숙이, 그 너머를 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