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b > 우자이/건축물

뮤지엄 산 - 건축 배치와 입면을 통한 명상의 순간

뮤지엄 산 기획전시 『풍경에서 명상으로』

기획전시 『풍경에서 명상으로』를 돌아보기

  19년 2월 뮤지엄 산에 방문했던 기억이 아직 남아있다.
일이 가져다주는 두려움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나는 명상이 주는 평안에 목말라 있었고,
그 곳의 명상관에서 진행하는 짧은 프로그램과 '풍경'과 '명상'을 말하는 전시 제목에 이끌렸다.
전시는 첫 문장을 이렇게 적었다.

자연을 풍경의 대상으로 관조하는 순간, 풍경 속에 놓인 자기 자신을 마주하게 됩니다.

  풍경과 나의 관계를 고민해보자 말하는 듯 했는데,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풍경을 이루는 요소에 집중하기 바쁘지 않나 싶었다. 보통은 초록색이 어떻고, 어떻게 하늘거리는지 이파리 뒷면의 색이 얼마나 반짝이는지 넋놓고 볼테니까. 신선했다.
풍경 속에 있는 나를 생각하면 내가 놓여있는 상황에 대해 조금은 거리감을 두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겠지.
그렇게 시작된 작품 앞 명상은 전시관을 거닐며 계속 되었다. 산과 돌과 물이 한눈에 들어오는 창과 그 창을 바라볼 수 있게 놓여진 의자에 앉아 한참을 보냈다.

육근병 『Nothing』 Wind and Curtain 2012

  이제와서 그런 질문이 들었다.
뮤지엄 산의 어떤 점이 나를 큰 창 앞에 머물게 하였고,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풍경과 나의 관계를 고민하게 했을까?

뮤지엄 산은 산능선 위에 지어졌다

- 원경이 되는 산과 중경의 공간

뮤지엄 산은 주변 산을 원경으로, 골짜기의 빈 공간을 중경으로 한다.

  뮤지엄 산은 능선 위에 지어졌다. 정북방향으로 좌측에 속골산과 우측에 고양산, 그 사이에 박물관은 놓여져 있다. 산 위에서 양쪽 산을 원경으로 받아들인다. 골짜기에서 산을 올려다보는게 아니라 산꼭대기와 대등한 높이에서 바라보는 일 이어서 새롭다.
박물관과 원경의 산 사이는 비어있다. 골짜기를 내려다보기 어렵도록 계획된 탓에 더 그렇다. 비어있는 골짜기 공간이 중경이 된다. 이는 둘러싼 수평의 물과 돌과 초록이 하늘에 둥둥 떠있는 감각을 만든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곳에 있는 느낌. 하늘과 가까운 곳 아닐까 하는 감각.

둘러싼 평평한 땅이 하늘에 둥둥 떠있는 느낌이 든다.

 

뮤지엄 산은 절제된 식재와 키 큰 창을 갖는다.

- 근경이 되는 부분을 단순하게

식재와 물거울로 근경은 최대한 지우고 키 큰 창을 두었다

  근경은 세가지 계획의도가 연결된다. 식재에서부터 땅을 감싸고있는 물거울 그리고 키 큰 창으로.
뮤지엄 산의 식재는 부분적으로 평평한 대지 밑에 심어진다. 원경과 중경이 방해 없이 시야에 들어온다.
땅은 위치에 따라 물거울이 계획되었다. 하늘과 골짜기 빈 공간과 원경의 산세가 반사되어 시야에 들어온다. 원경과 중경이 한번 더, 역전된 상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이를 받아들이기 위해 키가 큰 창이 설치되었다. 큰 유리를 위한 두꺼운 프레임이 아쉽지만 하늘과 산과 공간과 물빛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계획들은 근경의 요소들이 가진 물성을 최대한 없앤다는 점에서 같다. 중경과 원경을 여과없이 받아들인다.

우자이 『뮤지엄 산 풍경 스케치 1』
우자이 『뮤지엄 산 풍경 스케치 2』
우자이 『뮤지엄 산 풍경 스케치 3』
우자이 『뮤지엄 산 풍경 스케치 3』

뮤지엄 산은 자연을 풍경으로 관조하게 한다. 그러나

  뮤지엄 산은 근경, 중경, 원경의 대상을 명확하게 하고, 이를 열거나 가려주는 조율을 통해 자연을 풍경으로 관조하게 한다. 한데 풍경이 명상이 되기까지는 이 건축물과 그 주변환경에 대한 계획만으론 무언가 부족하다. 결국 전시 『풍경에서 명상으로』에서 던진 이 말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우리가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애워싸고 있는 풍경이 지금껏 우리를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작은 풍경을 만나기 위해서 자연은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작은 풍경과 자연은 서로 마주본다. 뮤지엄 산은 그 마주봄을 방해하지 않는다.